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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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조’ 사이버 공개수배
누리꾼, 과잉진압 경찰 추적나서…포털, 관련 게시물 접근차단
| » 1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119주년 세계노동절 범국민대회 조직위원회' 주최로 열린 '민생살리기, 민주주의 살리기, MB정권 심판 범국민대회'를 마친뒤 종로3가 지하철역에 모인 시민과 학생들이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하자 경찰들이 지하철 구내까지 들어와서 최루액을 분사하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강제진압을 하고 있다. |
“이 사람을 공개수배합니다.” (포털 ‘다음’ 아이디 ‘불광동휘발류’)
경찰이 최근 노동절 및 ‘촛불 1년’ 집회에 강경 대응한 데 맞서, 누리꾼들이 과잉진압 경찰관을 찾는 ‘사이버 추격전’에 나섰다.
발단은 지난 1일 노동절 행사 뒤 서울 종로3가역 주변에서 벌어진 노동자들과 경찰의 충돌. 이날 진압부대 맨 앞에선 지휘관으로 보이는 한 경찰관이 곤봉을 마구 휘둘렀고, 이 장면은 사진으로 찍혀 보도됐다.
다음 아고라 등에서 그를 성토하던 누리꾼들은 “그냥 놔두면 다른 경찰들이 아무나 때려도 되는 줄 알 것”(아이디 ‘Hermes’)이라는 등의 의견을 좇아 추격전을 벌였다.
진압복에 붙어 있는 부대 마크를 분석하고 소속 부대 누리집까지 뒤진 누리꾼들은, 결국 조아무개 경감(전투경찰대장)을 지목했다. 누리꾼들은 경찰 폭력을 풍자하는 뜻에서 그에게 ‘사무라이 조’, ‘스틱 조’ 등의 별명을 붙였다. 다음 카페 ‘안티 이명박’ 쪽은 당시 다친 사람들로 고소인단을 구성해 조 경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그러나 조 경감 관련 인터넷 게시물은 8일 현재 블로그에서까지 모두 삭제되거나 임시로 접근이 차단되고 있다. 이는 조 경감 쪽에서 ‘개인정보 노출’을 이유로 포털 사이트 쪽에 차단을 요청한 데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황순원 한국진보연대 민주인권국장은 “전투경찰에게 보장된 익명성이 집회 진압 때 과잉 폭력을 낳는 원인 중 하나”라며 “여느 공무원들처럼 경찰도 이름과 소속을 밝히는 표찰을 달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포털사이트 블라인드 처리 논란... 조 경감 "권리침해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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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후 6시 20분께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출입구 쪽.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시위대는 밖으로 나가려 했고 1개 중대 병력의 경찰은 못 나가게 막아섰다.
시위대와 경찰의 공방전 와중에 이른바 '경찰 스타'가 탄생했다. 서울경찰 제4기동대 302중대 조삼환 경감이다.
당시 조 경감은 1m50㎝ 정도의 장봉을 시위대에게 휘둘렀고, 이 모습이 사진에 찍혀 인터넷에 곧바로 퍼졌다. 그의 이름은 포털 검색어 10위권 안에 들 정도가 됐다.
그러나 5월 8일 현재 포털에서 '조삼환' 이름 석 자를 입력해보면 '해당 글은 관리자에 의해서 블라인드(blind) 조치된 글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뜬다.
어떻게 된 것일까? 조 경감이 명예훼손과 초상권 침해 등을 이유로 권리 침해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8일 포털 다음의 한 관계자는 "지난 4일 당사자로부터 개인정보 노출, 명예훼손과 초상권 침해 등을 이유로 권리침해 신고가 접수되어 임시조치 등을 취했다"고 밝혔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권리침해 신고가 접수되면 포털 등의 사업자는 한 달간 해당 글을 블라인드 처리해야 한다. 이 기간동안 인터넷 사업자 또는 블라인드 처리를 당한 사람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해 사후 처리를 하게 된다.
조 경감은 8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나는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사진 하나만 보고 경찰이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른 양 글이 떠돌아 다녔다"며 "우리 부대 홈페이지)에 터무니없는 비난 글이 많았다"고 말했다.
조 경감은 "이런 글이나 사진 등은 사실 왜곡이라고 생각해 권리 침해 신고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우리 대원들 가운데는 시위대에게 끌려가 코뼈가 부러진 경우도 있었다"며 "나는 시위대를 직접 때리지 않았다, 시위대한테 대원들이 맞으면 서로 치고받고 싸우니까 이를 떼어놓기 위해 장봉을 휘두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 경감이 장봉을 휘둘러 시위대를 직접 때렸다는 주장도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당시 현장에 취재 카메라만 30대가 넘었다, 만약 내가 때렸다면 그 모습이 찍혔을 텐데 그런 장면은 없다"고 반박했다.
▲ 1일 오후 종로3가 지하철역에서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민중의소리> 김아무개 기자의 다리에 피멍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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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이명박 대통령이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 회견을 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제국의 역습’이 시작됐다. ‘역습의 신호탄’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강행이요, ‘역습의 타깃’은 ‘악’의 근원인 문화방송 〈PD수첩〉과 촛불시위 시민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을 받는 이가 있었으니, ‘역습의 선봉장’ 역할을 맡은 대한민국 검찰이다.
![]() △ 6월24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김경한 법무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
선봉장이 쏜 ‘역습의 신호탄’은 지난 6월26일 검사 5명으로 〈PD수첩〉 수사팀을 구성한다는 발표였다. ‘역습의 사령부’인 정부와 여당에서 〈PD수첩〉에 대한 일벌백계를 언급한 직후의 조처였다. “검사 한 명에게 맡겨 두세 달 수사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최교일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라는 친절한 설명이 뒤따랐다.
사실 검찰의 강경 드라이브는 이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5월26일 새벽에 법무부 국·실장들을 서울 세종로 분실로 긴급 소집한 뒤 검찰에 “불법 집회의 배후자를 찾아내 엄벌에 처하라”고 지시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런 엄벌 의지는 뒤이어 수십만 시민들의 자발적인 촛불 합류로 인해 ‘헛발질’임이 증명됐으며, 전세는 ‘역습의 총사령관’인 이명박 대통령까지 궁지에 몰리는 쪽으로 급전했다.
대검 게시판에 실명 비난글 3천여 건
납작 엎으려 사태를 관망하던 검찰은 6월10일 촛불시위가 정점에 이른 뒤 정부와 보수 언론이 쇠고기 추가 협상을 두고 “성공작”이라며 여론 조작에 나서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6월16일 촛불시위를 생중계해 인기를 얻은 사이트 ‘아프리카’를 운영하는 나우콤의 문용식 대표이사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고, 20일에는 김경한 법무부 장관의 특별 지시라며 조·중·동 광고 게재 운동을 벌이는 누리꾼들에 대한 수사 방침을 발표했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25일 경찰의 시위대 강제 연행에 이은 26일 〈PD수첩〉 수사팀 구성 발표는 ‘쇠고기 사태의 원흉’을 확실히 손보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또다른 원흉인 다음의 ‘아고라’는 국세청이라는 별동대에 진즉에 사로잡혀 세무조사라는 곤욕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연 작전 끝에 촛불의 힘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날카로운 발톱을 뽑아들기 시작한 검찰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보인 반응은 차가웠다. 지난 6월20일 검찰이 광고 게재 거부 운동을 벌인 이들을 수사하겠다고 발표한 뒤, 대검찰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 쑥대밭이 된 것에서 민심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다.
“나부터 자수하겠다. 잡아가라”는 글부터 “검찰들, 니넨 권력의 개야” “국민을 억압하는 마피아, 정말 재수없다” “차라리 자결하라. 뱅신(병신) 검찰이여” 등 원색적인 비난에 이르기까지 무려 3천여개에 달하는 글들이 올라온 것이다. “검찰은 대한민국의 SRM(특정위험물질)” “(대통령에게) 그렇게 바락바락 대들던 잘났던 검사들 어디 가셨나요?” “대검이 아니라 쥐검으로 이름 안 바꿉니까?” “정문에 ‘조선일보를 더욱 섬기겠습니다’라고 써붙이세요. 그래야 언행일치가 되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것입니다” 등 조롱 섞인 글들도 여럿이었다.
![]() △ 검찰과 경찰은 촛불시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는 납작 엎드려 사태를 관망하다가, 촛불시위 참가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역습’에 나서고 있다. 6월16일 광화문 네거리에서 경찰의 연행에 저항하는 시민.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
이런 글들이 더욱 무게를 갖는 이유는 이들 모두 자신의 실명을 걸고 검찰을 공박했다는 점 때문이다.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려면 주민등록번호 입력 등 본인 실명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글쓴이들의 아이디는 바로 그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촛불시위 정국에서 검찰의 움직임에 쏟아지는 일반 시민들의 비판을 검찰 내부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서울 서초동 검찰청에 근무하는 한 부장검사는 “예전 검찰에 비해서는 촛불시위 대처 등을 두고 유연하게 바라보는 간부들이 조금 늘어났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는 ‘촛불시위는 과격 분자가 주동하는 것이고 아이들이 거기에 넘어가서 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라며 “한마디로 (청와대와 장관의) 뜻을 받들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검찰 수뇌부는 정권과 거의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고, 더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검사들은 어떤 분위기일까? 실제 대검찰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오른 글들 가운데는 2003년 ‘검사와의 대화’에서 평검사들이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대들던 기억을 언급하며 “평검사들은 뭐하냐”는 내용을 담은 게 상당수였다. 하지만 평검사들은 조용하다. 서울 지역에 근무하는 한 부장검사는 “평검사들이 도대체 의견 개진이 없다. 특별 지시가 부당하다든지, 아니면 이런 건 수사를 해야 한다든지 가타부타 뭔 말이 전혀 없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과거 평검사들은 검찰과 관련한 민감한 이슈에 대해 개인적 의견을 내부 게시판에 올리고 의견을 모아가곤 했다. 지난 2006년 대검찰청에 근무하던 금태섭 전 검사가 삼성 수사와 관련해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비단 촛불 민심이 아니더라도 평검사들이 이렇게 조용한 것은 과거와는 다른 이례적인 모습이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부장검사는 “정권이 바뀌었는데 검찰이 이렇게 (내부적으로) 조용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정권 교체기마다 검찰 내부에서는 인사나 정책을 둘러싸고 온갖 평지풍파가 일었고, 그 와중에 평검사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는 갑작스럽게 호남 출신 검사들이 대거 약진하면서 내부에서 많은 비판이 나왔으며,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의 항명 파동 와중에는 평검사들이 검찰 수뇌부의 행태를 비판하는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다.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검찰 인사제도 개혁과 관련해 평검사들이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여 ‘검사들과의 대화’가 열리기도 했다.
![]() △ 경찰의 강경진압을 주도하고 있는 어청수 경찰청장. (사진/ 연합 한상균) |
정치적 독립성 또다시 시험대에
그렇다면 지금 검사들은 왜 이렇게 조용한 것일까? 더군다나 검찰 스스로가 과감하게 정권과 보수 언론의 첨병을 자처하는 상황에서 평검사들은 왜 유독 침묵을 지키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의 한 평검사는 “일부 속으로 앓는 검사도 있을 것”이라면서 평검사들이 침묵하는 배경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내놨다. “과거 참여정부는 청와대나 법무부 장관이 ‘친검’이 아니었다. 여기에 대통령도 손을 놓았으니, 그런 상황에서 (검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청와대나 법무부 모두 친검 인사들이다. 불만이 있더라도 거기다 대놓고 무슨 발언을 하겠나. 그런 발언 자체가 ‘반검’이 된다.” 사안의 중요성보다는 검찰 조직에 대한 정권 또는 외부의 ‘불순한’ 태도 여하에 따라 검사들의 움직임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범국민적 사안이라도 조직의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으면 변수 안되는 셈이다.
지난 2003년 ‘검사와의 대화’에 참석했던 한 검사는 좀더 ‘솔직한’ 의견을 내놓았다. ‘광고 게재 거부 운동 누리꾼에 대한 수사 방침은 ‘정치검찰’로 퇴색하는 움직임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정치적 중립성은 그때 그 대화로 많이 확립됐으며, 조·중·동 광고 게재 거부 운동에 대한 수사를 정치적 독립성의 후퇴로 보는 시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적 중립성은 정치적 사건에 대해 수사를 해라, 말라는 간섭을 배제하는 것이다. 신뢰사범에 대한 장관의 특별 지시가 정치적 중립성의 훼손과 등치한다고 보지 않는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결국 검찰 수뇌부는 청와대와 장관만을 바라보고 평검사들은 동조·방관으로 일관하는 사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은 또다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검찰의 이런 행보가 후세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세월이 좀더 흘러야 알 수 있겠지만, 한 누리꾼은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노통과 맞장 뜨던 평검사들 다 어디 갔습니까? 전부 변호사 개업하셨나요? 쪽팔리지 않습니까? 다시는 검찰 독립, 이 따위 소리 지껄이는 일 없기 바랍니다.”
촛불시위와 관련한 법무부·검찰의 행보
5월26일
김경한 법무부 장관, 새벽 6시30분에 서울 세종로 분사무실로 법무부 실·국장들 소집. 검찰에 “불법 집회 선동하고 배후 조종한 사람 끝까지 검거해 엄정히 처리하라”고 지시.
6월16일
서울중앙지검, 촛불시위 온라인 중계 사이트 ‘아프리카’를 운영하는 나우콤 문용식 대표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구속. 나우콤은 “문 대표 구속은 정치적 탄압” 주장, 검찰은 “구속과 ‘아프리카’는 무관” 주장.
6월20일
대검 “법무부 장관의 특별지시에 따라 인터넷을 매개로 한 기업체 광고 중단 요구 사범 수사할 것” 발표. 전국 검찰청에 ‘신뢰저해사범 전담수사팀’ 꾸려 집중단속에 착수하도록 지시.
6월27일
경찰청 인권위원회 와해 배경
“전경이 아니라 수뇌부가 문제잖아. 정권의 똘마니 노릇을 하는데, 무슨 인권경찰은 인권경찰이냐. 이 상황에서 사퇴라도 해야지, 그럼 어떻게 하나?”
지난 6월26일 경찰청 인권위원에서 사퇴한 박순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정권이 바뀐 뒤 경찰이 1천%, 2천% 완전히 바뀌었어. 우리가 아무리 의견을 내도 아무런 답이 없어. (어청수 경찰청장은) 기본적으로 인권이 없는 ×이야. 취임한 지 몇 달인데, 아직 얼굴도 한 번 못 봤으니 더 말해서 뭐해.”
지난 2005년 경찰이 인권경찰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의지를 과시하며 출범시킨 경찰청 인권위원회가 사실상 와해됐다. 모양새는 위원들의 자진 사퇴지만, 그 배경에는 어 청장이 취임한 뒤 보여준 경찰의 퇴행적인 행태들과 인권위원회에 대한 고사 작전이 있었다.
우선 경찰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백골단’ 부활 방침을 내비치더니, 전·의경 폐지안 반대, 불심검문 불응시 구류·체포 추진 등 인권과 거꾸로 가는 정책들을 잇따라 내놨다. 이제는 귀찮은 존재가 돼버린 경찰청 인권위의 힘을 빼는 실무적인 작업도 함께 진행됐다. 2005년 창설 뒤 매달 인권위 회의가 열릴 때마다 경찰청장 또는 차장이 참석하고 치안감·경무관들인 경찰청 국·관들이 배석했지만, 정권이 바뀐 뒤로 수뇌부는 단 한 번도 인권위원들과 마주 앉지 않았다. 또 지난 3월 정기 인사 때는 인권위의 사무처 구실을 하는 인권보호센터 소속 직원들이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모두 교체됐으며, 경정급 자리가 두 개에서 하나로 줄어드는 등 조직도 축소됐다. 경찰관 가운데 인권 분야 유공자를 선발해 특진시키던 제도 또한 폐지됐다.
경찰청 인권위원들의 활동은 의도적으로 무시당하기 시작했다. 오창익 위원(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의견도 내고 청장 면담도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며 “사실상 1980년대 경찰로 회귀하겠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위원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인권위원들의 자진 사퇴에 대해 김금석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장(총경)은 “이들이 대개 1차에 이어 지난해 2차까지 연임한 분들이어서 피로하셔서 그런 것 같더라”며 “위원회 재구성이나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차차 검토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교일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 미국 소 광우병 위험성 보도한 문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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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arare-1

Posted by barare-1

어제 1면 기사가 너무 가슴아파서 신문 안봤거든요, 오늘 신부님들의 멋진 모습을 담았길래 마음
풀고 어제 신문까지 훑어보는데 재미있고 기특한 광고를 찾았습니다.
(주) 에버미라클, (주) 온리원에서 낸 광고, "사랑의 회초리"
조선일보에 광고 냈다가 우리의 칭찬을 듣고 마음 고쳐 먹은 모범적인 기업!!!

Posted by barare-1
우선, 경과를 전합니다. 기사에 제 이름이 좀 나는 바람에 놀라신 분들 많으시죠?
저뿐 아니라 저희 라디오21 중계팀 모두 탈진하고 사소한 부상들을 입었습니다. 황정아 PD는 어깨에 돌을 맞았고, 이ㅇㅇ 감독은 물대포를 너무 맞아 일시적 저체온증으로 잠시 의식불명(?)이 되기도 했어요. 저희를 도와주시던 라사모님들(아이디는 비밀^^)도 많이 맞았습니다. 장비도 습기가 차서 문제가 좀 생겼고요. 그래서 당분간 현장에 못 나갈 것 같습니다.
저도 물대포 몇 대 맞고 정신없던 차에 돌멩이가 몇 개 집중해서 저를 때리는 바람에 넘어졌지요. 하지만, 우리 팀은 크게 피해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옆에서 제가 쓰러지는 장면을 담고 있었던 칼라티비 팀은 조승수 전 의원이 저를 때린 것보다 열 배는 더 큰 돌멩이에 머리를 맞아 머리가 깨질 뻔했다는군요. 마침 조 의원이 헬멧을 쓰고 있었기에 헬멧만 깨졌다는데, 그래도 아마 속으로 뇌출혈이나 뇌진탕 증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칼라티비는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아 스탭들이 많이 연행되어 갔다고 하네요.(ㅠ.ㅠ) 다행히 저희는 연행자는 없습니다.
어제는 돌에 맞은 손이 아파서 라디오21에 글 하나 겨우 올리고는 손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노사모랑 서프앙님들에게 경위를 말씀드리지 못했네요.
어쩌다 보니 라디오21이 5월 25일 밤에서 26일 새벽 신촌시위를 생중계해드린 뒤로 라디오21에 시위 속보를 요청하는 청취자들이 대거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현장상황과 돌아가는 판세에 대한 정보가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 당부 말씀 드립니다.
광화문에 차벽이 생기고 사람들이 차로 올라가던 날이 6월 8일 새벽이었는데요. 그날 굉장히 수상쩍은 일들이 카메라에 많이 잡혔습니다. 전경차 위에서 사람들에게 짱돌, 생수병, 오물주머니 등등을 투척했어요. 차 밑으로 쇠 파이프를 밀어주기도 했고 살포하고 빈 소화기 통을 일부러 시민들 쪽으로 던져주기도 했죠. 게다가 어디서 등장했는지 긴 사다리가 대거 갑자기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후로도 경찰은 지속적으로 시민들에게 소위 폭력시위자들이 사용하는 무기로 추정되는 물건들을 계속 공급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제가 다친 28일 밤에는 방송차에서 시민이 낫을 휘두른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이나 그 순간 낫을 휘두르는 시민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맨 앞에 있었거든요. 설마 낫을 시민들 속에서 시민을 향해 휘두른다는 말은 아니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좀 이상스러워서 계속 여러 게시판에 시민들이 올려주는 글과 사진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내일 조중동엔 '낫' 등장 이야기 나오겠군 하면서요.
아니나다를까 조선일보에 기사가 났습니다.
촛불시위가 도심 시가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평화롭게 진행되던 초기 시위의 모습은 사라졌다. 경찰에 맞서 쇠 파이프나 망치를 휘두르고 경찰차를 박살 내는 폭력적인 상황이 최근 시위 때마다 재현된다.
경찰도 시위 초기부터 물대포를 쏘고 시위대를 향해 진압봉과 방패를 휘두르며 강경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시위 현장에서 불법과 폭력이 기승을 부리면서 자신의 신분 노출을 꺼리는 시위대 사이에는 "당신 프락치지?" "신분증 보자"고 추궁하기도 한다.
◆ 쇠 파이프에 망치, 낫까지 등장
29일 0시19분쯤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 서울시의회와 프레스센터를 연결하며 태평로를 가로지른 경찰버스 뒤에서 전경 50여 명이 갑자기 뛰쳐나왔다. 시위대에 대한 본격적인 해산 작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시위대 3,500여 명은 도로 옆 소화전에 호스를 연결해 만든 '사설 물대포'를 경찰을 향해 쏘고, 경찰버스를 쇠 파이프 등으로 박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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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태평로 일대에서 벌어진 시위 때 시위대에 의해 부서진 경찰버스가 29일 오전 도로변에 늘어서 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
가장 먼저 뛰쳐나온 것은 기동대 50중대와 306중대. 그러나 너무 빨리 뛰쳐나와, 뒤따르던 다른 중대원들이 뒤를 받쳐주지 못했다. 졸지에 2개 중대 소속 중 150명은 시위대 한복판 두 군데에 고립됐다. 이들은 그때부터 10분 이상 수백 명의 시위대에 둘러싸여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306중대 소속 한 소대장은 "시위대는 전경버스를 끌어낼 때 쓰는 밧줄을 대원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주위에 빙 두른 뒤 3~4명씩 끌어내 죽으라고 때렸다"고 말했다.
시위대가 사용한 무기는 1~2m짜리 쇠 파이프와 각목, 알루미늄 막대, 도로표지판, 심지어 장도리까지 있었다.
50중대 김모 중대장은 "이모(23) 상경은 장도리에 맞아 머리를 크게 다쳤고 박모(24) 이경은 쇠 파이프에 맞아 허리를 다쳤다"고 말했다. 김 중대장은 "낫을 휘두르며 위협하는 시위대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짧은 순간, 이곳에서만 전·의경 7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일단 여기 쓰인 기사는 완벽한 거짓말이지요. 시위대는 전경이 뛰어나온지 5분도 안 되어 모두 뿔뿔이 흩어졌구요. 도로는 삽시간에 텅 비었습니다. 제가 전경대가 최초로 뛰어나올 때 뒤로 도망가지 못하고(^^;;) 첫 부대가 지나간 다음 길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람 쪽으로 뛰어가 길 한복판에 있었기에 현장을 다 봤거든요. 조선일보를 보시는 독자들 정말 안됐습니다. 당장은 불순권력이 자기들 편이라 진실을 몰라도 살지만, 세월 지난 다음 역사의식 부재로 자손들에게 얼마나 무시당하겠습니까.
(첨가합니다. 전경대가 시민들에게 둘러싸인 적은 있었나보군요. 그런데 동영상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10분 이상 둘러싸여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고 말하기는 매우 옹색하던데요. 수상쩍은 장면이었습니다. 이 글 참조하세요.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gree%3Df)
어쨌든 그 낫 말씀입니다. 방송이 나오기에 직감적으로 경찰이 시민 쪽으로 낫 밀어 보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럼 낫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아고라 검색해보니 경찰 측에서 준비한 낫 사진 꽤나 뜹니다.
4시쯤이던가?
광화문 쪽으로 가고 있는데, 전대협 및 몇 무리로 보이는 사람들이 막 뛰어가기에, 쫓아갔습니다. 도착한 곳은, 안국동 뒤쪽이었는데, 전경들이 전경버스로 바리케이드를치던 중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완전히 막지는 못하고 시민들이 전경이 작업 중이던(바리케이드) 곳을 점하고 전경과 대치하던 중… 전경들이 사용하던 도구(차 끌어낼 때 밧줄 자르던)로 추정되는 도구들이 보여 핸드폰으로 찍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무에 걸어서 자동차 바퀴에 얽어매어놓은 쇠줄을 철거 후… 한 컷…
오늘 가족들 하고 온 어린이 청소년들 많았는데 정말 걱정되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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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미리 폭도로 몰기 위한 무기들을 준비하여 지속적으로 시민들 쪽으로 보내놓고는 방송을 해서 조중동에 알리바이 만들어주고, 그러고 나면 기사를 저렇게 써서 조중동 보는 사람들에게 시위대가 '낫'까지 휘둘러? 라는 경악감을 주는군요.
이런 사실을 보다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화도 나고 흥분도 되시겠지만 경찰이 공급한 무기를 보시는 분들은 집어서 사용할 생각 절대 마시고 민변과 인권지킴이 깃발 아래로 가져다주셔야 합니다.
제가 다치던 밤에도, 돌멩이뿐 아니라 꽤 크기가 큰 쇠로 만든 볼트, 너트도 던지더라구요. 이거 맞으면 크게 다칩니다. 작지만 굉장히 무겁고 단단하거든요. 온갖 쇠붙이도 던지더군요. 경찰 수뇌부는 시민이 빨리 폭도로 안 변하니까 아마 미칠 지경인 듯합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촛불집회 오면서 낫은커녕 쇠 파이프나 돌멩이 같은 것 전혀 준비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흥분하신 분들이 뭔가를 들어도 다 경찰 측에서 공급한 겁니다. 현장의 시민들이 알고 있고 저런 흉기들을 던진 전경 자신이 알고 있습니다. 저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거짓말하기 위해선 그 아이들은 남은 전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폭력시위 소리도 어젯밤으로 허무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경찰이 게릴라 시위를 벌이는 시위대에겐 무기를 공급할 방법이 없다 보니까 그냥 쫓아가서 근거도 없이 잡아들이더군요.
경찰은 모르고 시민은 아는 것, 시민의 무기는 카메라와 핸드폰과 진실이지 그들이 시민에게 한사코 쥐여주려는 저런 흉물들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긴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힘내세요.
ⓒ 노혜경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 ··· 3D131493[이 글의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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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최하는 '국민존엄 선언과 국가권력 회개를 촉구하는 시국미사'가 30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신부와 수녀, 일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권우성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최하는 '국민존엄 선언과 국가권력 회개를 촉구하는 시국미사'가 30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신부와 수녀, 일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 권우성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최하는 '국민존엄 선언과 국가권력 회개를 촉구하는 시국미사'가 30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신부와 수녀, 일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 권우성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최하는 '국민존엄 선언과 국가권력 회개를 촉구하는 시국미사'가 30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신부와 수녀, 일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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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중계 11신] 촛불문화제 이후 최대 ‘과잉진압’ 파장 클 듯 | |
2천여명 아침 7시께 자진해산…“혼자 가는 것이 미안해” 병원 후송 100여명·53명 연행…폭력의 악순환
아침 7시가 지나자 촛불시위는 끝이 났다. 시민 2천여명은 장대비를 맞으며 종로 거리를 지켰다. 시민들은 스스럼없이 서로를 ‘동지’라고 불렀다. 80~90년대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동지가’라는 노래도 이날 집회에 나왔다. 강아무개(28·서울 행당동)씨는 얼굴을 파묻고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강씨는 “밤새 함께한 사람들을 놓고 먼저 가는 것이 미안해 자리를 뜰 수 없었다”며 “지금까지 함께 해온 사람들과 끝까지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새벽 경찰의 폭력 진압을 함께 견뎌내며 그와 시위대 사이엔 끈끈한 연대감이 싹터 있었다. 다른 시민들도 비슷했다.
잔인한 경찰 진압이 휩쓸고 간 자리, 그러나 새벽 종로거리는 또 평화로웠다. 시민들은 ‘바위처럼’, ‘처음처럼’, ‘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춤을 추었다. 노래와 춤은 끝날 듯 말 듯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세시간이 훌쩍 흘렀다. 경찰은 더 이상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았다. 피로 물들었던 29일 새벽 서울 도심의 시위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축제처럼 막을 내렸다. 시민들은 7시께 ‘시청광장’으로 자진해 이동하며 도로점거를 스스로 풀었다. 28일에서 29일까지 벌어진 촛불시위는 피로 얼룩졌다. 시민도, 경찰도 끔찍한 새벽을 맞은 슬픈 하루였다. 경찰의 폭력 진압이 발단이었다. 특히 새벽 2시께 서울시의회 앞에서 투입된 전경부대는 살기어린 눈빛으로 시민들을 무차별 공격했다. 시민들의 항의에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이 다친 줄 아느냐”고 악을 썼다. 두 달 가까이 계속된 시위진압에 지친 전경들도 인내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격렬해진 시민들도 경찰의 폭력에 맞대응했다. 경찰이 거칠어지니, 덩달아 시민들도 거칠어지는 양상이다. 물고 물리는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경찰과 시민들 모두 부상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10신 : 29일 4시]
“아무것도 들지 않은 맨손의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강경 진압해서는 안된다. 경찰이 국민의 지팡이가 되어야지, 정권의 몽둥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시위대열 앞을 지키고 있는 강기갑 의원이 새벽 2시께 <한겨레> 영상취재팀과 가진 인터뷰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을 매섭게 비난했다. 강 의원은 “이명박 정권에겐 더이상 기대나 희망도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추가협상과 관련해서는 “30개월 미만 머리·뇌·눈·척수와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차단시켰다고 했는데, 얼마든지 들여올 수 있고 검역주권을 찾아왔다고 했지만,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며 “모두 뻥튀기”라고 비난했다. 시위대 맨앞 경찰 병력 30m쯤 앞에서 연좌하고 있는 강 의원 주변에는 이정희·홍희덕 의원, 천영세 민노당 대표, 최순영 전 의원, 이수호 비대위원장, 박승흡 대변인 등이 스크럼을 짠 채 앉아 있다.
새벽 3시30분. 빗줄기는 점차 굵어지고 있지만, 시민들의 의지는 꺾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치며, 촛불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종로 일대는 2시간째 소강상태다. 경찰 역시 더이상 강제 해산이나 진압에 나서지 않고 있다. 몇몇 시민들은 불을 피우며, 추위를 녹이고 있다.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와 <바위처럼> 등의 노래가 나올 때에는 마치 축제 같았다. 전남 광주에서 온 교사 고재성(48)씨는 “전남 진도에서 왔는데, 아까 전경들 때문에 죽는 줄 알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서울시경찰청 중간 집계 결과 현재까지 촛불시위 관련 연행자는 5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책회의가 새벽 3시30분까지 파악한 부상자(중·경상자)는 60여명이며, 백병원·국립의료원(19명)·적십자병원·강북삼성병원·서울대병원(8명) 등 서울의 주요 병원에서 분산치료를 받고 있다. 부상자 중에는 인권침해감시단, 의료지원단 등도 포함됐다.
한편,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한 여성이 진압경찰에 둘러싸인채 집단구타당한 장면이 <노컷뉴스> 영상취재팀 카메라에 잡혀 파문이 예상된다. 영상은 1차 진압이 시작된 29일 새벽 0시30분께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비옷을 입은 여성이 도로 위에 쓰려지자, 진압경찰 5~6명이 발로 짓밟고 진압용 장봉으로 집단구타당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경찰은 지난 1일에도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서울대 여학생을 군홧발로 구타 해당 경찰이 사법처리되고 지휘부가 서면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 허재현 최현준 황춘화 송경화 기자
[9신 : 29일 2시10분]
1시10분께 태평로 쪽 시민들을 향한 경찰은 2차 진압을 재개했다. 2차 강제 진압은 덕수궁 돌담길과 프레스센터 쪽에서 온 병력 200여명에 의해 이뤄졌다. 경찰은 이때까지 대한문 등 태평로 쪽 도로에 있는 시민들을 밀어내 모두 시청광장으로 밀어 올렸다. 이후 태평로 일대는 전경들이 도로를 차지했고, 다친 시민들을 후송하기 위한 구급차가 수시로 드나들고 있을 뿐 시민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곳에 남아 있던 시민 1천여명이 프레지던트 호텔 앞으로 빠져 을지로 1가를 거쳐 종로 1가로 진출해, 종로에 남아있던 시민들과 합류했다.
종로 쪽은 새벽 2시 현재, 1차 진압 이후 소강상태다. 강기갑 의원이 대열 맨앞에서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 그 뒤에는 서울시청 쪽에서 합류한 시민들을 포함, 5천~1만여명이 도로를 점거한 채 <광야에서>, <바위처럼> 등의 노래를 부르며, 촛불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통합민주당 의원들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대열 곳곳에 남아 있다. 이와 별개로 종로구청 입구 쪽에선 시민 1천여명이 경찰 병력과 대치중이다.
‘맨손의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1, 2차 진압으로 부상자가 다수 발생했지만,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수시로 드나드는 구급차의 수와 의료지원단의 증언을 볼 때 1백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을 뿐이다.
의료지원단 김아무개(40대)씨는 “강제진압 이후 나 혼자서만 30여명을 치료했는데 목과 턱, 입술 등이 터져 피가 흐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며 “다리 골절을 당한 사람도 있었고, 의식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시의회 쪽에서 1차 진압 과정을 목격한 김성복(40)씨는 “서울시의회 쪽 주차장에 시민 50여명이 앉아있거나 누워있었는데, 전경이 뒷골목에서 내려오면서 이들을 방패로 찍고 곤봉을 휘둘러 많은 사람이 다쳤다”며 “오죽 했으면 성질이 나서 우산을 다 던졌다”고 말했다. 홍성찬(26)씨는 “넘어진 여자에게 전경이 달려들어 방패로 찍는 모습을 봤다”며 “말리는 시민들을 오히려 곤봉으로 때렸는데, 해산이 아니라 진압이 목적 같았다”고 증언했다.
한동안 의식을 잃다가 1시40분께 의식을 찾은 김영순(59·여)씨는 “서울시의회 앞 인도에 서 있었는데, 곤봉으로 얼굴과 어깨 등을 가격 당해 오른쪽 쇄골이 골절됐다”고 억울해했다. 김씨는 곧바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다.
유아무개(32)씨는 시민에게 집단 폭행을 당할 위험에 처한 전경을 보호하려다, 머리를 방패에 찍힌 경우다. 머리를 붕대로 감은 그는 “시민들이 전경 1명을 붙잡아 때릴려고 할 때 뜯어 말리던 도중에 진압하는 전경들에게 방패로 머리를 찍혔다”며 “우리는 너희를 보호해 줬는데, 어떻게 시민을 때릴 수 있나. 난 이제 더 이상 너희를 보호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경들을 향해 울부짖었다. 유씨 역시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갔다.
최우근(43)씨는 경찰의 과잉진압을 과거 독재정권과 비교하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경찰의 강경한 진압방식이 오히려 시민들의 폭력을 유발하고 있다”며 “마치 80년대로 돌아간 것 같다”고 혀를 찼다. 최현준 허재현 황춘화 김성환 기자
[8신 : 29일 1시]
12시20분께 태평로쪽에서도 경찰의 진압이 시작됐다. 수십명의 전경들이 “와”하는 함성을 지르며 시위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병력이 경찰들에 의해 포위되자 12시30분께 수백명의 병력이 방패와 진압봉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마치 80년대 진압방식이 부활한 듯하다. 경찰은 이에 앞서 촛불시위에 대한 진압 방식을 검거 위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2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80년대식 강경진압을 한번 해볼까 싶기도 하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틀만에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경찰들은 시민들을 향해 욕설을 휘두르며 진압봉으로 가격하거나, 방패로 찍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큰 부상을 입었다. <한겨레> 취재영상팀 박종찬·허재현 기자와 <문화방송> 송양환 기자도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 허 기자는 “기자라는 신분을 밝혔음에도 무차별적으로 때렸다”며 “일반 시민들에겐 오죽 했겠나”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한 시민은 “경찰들이 갑자기 분말소화기를 쏘고, 곤봉을 휘두르며 뛰어와 무서웠다”며 “많은 사람들이 방패에 찍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고 증언했다.
12시40분께 태평로쪽 도로는 경찰이 점거했다. 시민들은 모두 프레스센터 인근을 비롯 인도로 밀려났다.
이에 앞서, 12시께부터 진압봉과 방패를 휘두르면서 경찰의 진압이 시작된 종로 쪽에선 수십명의 연행자가 나왔다. 경찰은 인도 쪽에 있거나 현장을 구경하러 나온 시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연행하고 있다. 연행 과정에서 체포전담반이 경찰과 말다툼을 벌이거나, 욕설을 한 시민들을 표적삼아 연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취재중이던 <한겨레> 김성환 기자도 경찰에 의해 두 번이나 연행될 뻔했다.
오문수 종로경찰서장이 진압 현장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시위대는 종로1가 뤼미에르 빌딩 인근 도로까지 밀렸다. 일부 시민들은 인도로 빠졌다. 이 곳에는 6천~7천명의 시민들이 남아 있다.
한편, 28일 촛불집회에선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가 사용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상봉 <라디오21> 기자는 “9시20분께 물대포를 맞았는데, 염산 냄새가 나고 순간 아찔했다. 물대포 수압도 세진데다 최루액까지 섞인 것 같다”며 “눈에 물대포를 맞았던 3명이 병원에 실려 갔고, 함께 물대포를 맞았던 다른 동료도 지금까지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실제 10시10분께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가 <라디오21> 중계를 하다,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실신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최현준 김성환 허재현 기자
[7신 : 29일 0시]
수백명의 시민들이 경찰 차벽을 끌어내기 위해 밧줄을 당겨도 경찰차가 꿈쩍도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경찰차 뒤에서 경찰들이 밧줄로 묶은 경찰차를 시민들이 당기는 반대편으로 똑같이 당기고 있어서다.
실제 태평로 쪽 500여명의 시민(150m 길이)들이 엄청난 힘으로 버스 1대를 끌어당기고 있다. 하지만 위치에 변동이 없다. 이와 동시에 버스 뒤쪽에서도 40여명의 전경들이 버스를 반대쪽으로 잡아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밧줄을 당기는 인원이 1/10 수준인데 전혀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버스 위쪽을 견인차가 지탱해주고 있어서다.
경찰차를 끌어당기지 않는 전경들은 1차 저지선 뒤에서 또다른 2차, 3차 저지선을 쌓고 있다. 1차 저지선이 뚫리더라도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광화문 사거리에는 전경버스와 추가 병력, 소화기와 살수차가 속속 도착하고 있다.
종로 쪽에도 여전히 1만5천여명의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들은 경찰버스 유리창을 깨거나 소화기와 물대포를 쏘는 경찰을 향해 물병을 던지기도 했다. 시민들이 밧줄을 묶어 경찰차를 끌어내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종로 쪽은 경찰이 소화기를 무차별적으로 난사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다.
밤 11시50분 현재, 종로쪽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경찰이 곤봉과 방패를 휘두르며, 강제 진압에 들어갔다. 경찰 차벽 5대 가운데 1대가 시민들에 의해 뚫리면서부터 시작됐다.
경찰버스가 빠진 공간으로 전경 600~700명이 방패를 내리찍으며 달려들었다. 소화기도 집중적으로 뿌려지고 있다. 시민 여럿은 후퇴하는 과정에서 넘어졌고, 수십명은 방패·쇠뭉치·소화기 등에 찍혀 부상을 입었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는 “넘어지는 시민들을 둘러싸고 방패로 마구 내리찍었다”며 “현장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며, 수십명이 피를 흘리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들은 물병 등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던지며, 폭력 진압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김성환 기자
[6신 : 28일 오후 10시50분]
분말소화기와 물대포의 무차별 공격에도 불구, 시민들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시민들은 “평화시위 보장하라”, “우리앞길 막지마라”, “폭력경찰 물러나라”, “국민들이 승리한다”, “이명박은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2시간째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경찰이 “형광물질을 넣어 살수하겠다”며 “형광물질이 묻은 사람들을 검거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 형광물질이 옷이나 신발 등에 묻으면 지워지지 않는다.
경찰의 무차별 물대포는 시민뿐 아니라 취재진들에게도 직사되고 있다. 대열 중간중간에 있는 유모차 부대와 어린아이, 국회의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9시25분께 김상희·김재윤·안민석·이용섭·이춘섭·전혜숙·조경태·최문순 등 민주당 의원 10여명과 함께 태평로 현장을 찾은 김재균 의원은 경찰이 쏜 분말소화기를 눈에 맞았다. 김 의원은 “국민의 요구는 정당하며, 과잉진압을 막기 위해 왔다”며 “눈이 따갑고 못 뜰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냐.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곳곳에서 학생과 여성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경찰 차벽에 올랐던 한 시민이 10시30분께 경찰의 집중적인 물대포를 맞고 떨어졌다. 부상자도 속출하고 있다. 도로 위는 경찰이 쏜 물 때문에 물이 흥건하다. 마치 ‘전쟁터’ 같다.
민주당 의원들은 10시30분 현재 태평로 쪽 대열 앞에서 손과 손을 맞잡은 채 “경찰은 과잉진압 중단하라. 시민의 정당한 의사 받아들여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찰의 물대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9시50분께부터는 시민들도 프레스센터 앞 소화전에서 호수를 끌어와 경찰을 향해 뿌리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경찰은 물과 소화기뿐 아니라 돌멩이, 쇠뭉치, 다 쓴 소화기병까지도 시민들에게 던지고 있다.
집회 참가자 1만5천여명이 경찰과 대치중인 종로쪽도 9시10분께부터 1시간 넘게 경찰의 물대포가 계속되고 있다. 시위대 키 높이에서 거의 직사에 가깝게 뿌리고 있어 시민들의 안전이 염려되고 있다. 시민들이 경찰버스 창문을 부수려하자, 버스 안에 있던 전경들이 소화기를 뿌려대기도 했다.
시민들은 물병과 계란 등을 던지며, “길을 비키라”고 항의하고 있다. 대열 앞쪽에 있는 시민들은 돗자리, 우산 등을 펼치고 물대포를 맞고 있다. 시위대가 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기를 시도하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일부 시민들은 레이저포인터로 살수차 CCTV 카메라를 비추며 살수를 방해하기도 했다. 대열 앞에서 소화기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대열 뒤쪽에서 물병을 건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안티 이명박 모여라”, “아고라 모여라” 등 물대포를 맞는 와중에도 참가단체끼리 대열을 정비하는 모습도 보인다. 김성환 허재현 기자
[5신 : 28일 오후 9시30분]
8시30분께 촛불문화제가 끝났다. 곧바로 거리행진에 들어갔다. 8시20분께 촛불문화제 도중 시민들에게 소화기를 뿌렸던 경찰은 거리행진이 시작되자마자 분말소화기와 물대포를 난사하며, 강경진압에 나섰다. 경찰들은 돌과 쇠뭉치 등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던져 몇몇 시민들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10만의 촛불행렬은 프레스센터와 서울시의회, 광화문사거리에 두 겹으로 세워진 경찰 바리케이트 쪽과 을지로 1가 쪽으로 나뉘어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곧바로 광화문에 집결할 예정이다. 방송차량 뒤쪽에는 대형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프레스센터와 서울시의회 쪽에 세워진 1차 저지선(경찰 차벽)을 시민들이 밧줄을 감아 끌어내려 하자, 경찰은 분말소화기와 물대포를 난사하며 이를 막고 있다. 이에 앞서 경찰은 8시40께부터 해산방송을 했다.
시민들의 기세는 경찰의 거센 탄압에도 불구 꺾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폭력경찰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의 진압에 맞서고 있다.
을지로 1가 쪽으로 행진을 시작한 1만여명의 시민들도 8시55분께 경찰차 5대로 만든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는 교보문고와 광화문 우체국 앞까지 진출했다. 일부 시민들은 경찰 차벽에 계란을 던지거나 버스 외벽에 락카칠을 했다. 시민들이 바리케이트를 치우기 위해 전경차를 흔들어대기 시작하자, 이곳에서도 9시10분께부터 물대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김성환 기자
[4신 : 28일 오후 8시30분]
참가자는 빠르게 불어 6월10일 이후 최대 인파인 10만명(주최쪽 추산)이 서울광장과 태평로 일대를 가득 메웠다. ‘국민에게 항복하라, 촛불이 승리한다’는 제목의 촛불문화제엔 유모차 부대, 민주노총 조합원, 가족 단위의 참가자, 청소년, 대학생, 직장인, 종교인, 전대협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다.
8시10분께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무대에 올랐다. 강 의원은 “우리 촛불대행진 걱정하고 반대하는 국민들이 있다. 우리가 비폭력 평화적으로 촛불대행진을 해 사회를 바로잡고, 정치를 바로 세우는 함성을 전 국민한테 보내자”고 말문을 열었다. 강 의원은 “우리 소망은 우리 식탁을 확보하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재협상 요구하는 국민적 권리를 요구하는 소박한 것”이라며 “정부가 26일 9시를 기해 대국민 선전포고를 했는데, 우리 국민들이 응징할 것이다. 끝까지 비폭력으로 우리의 세상을 촛불 물결로 세상과 정치 바꿔나가자. 오늘 민주노동당과 통합민주당 국회의원이 맨 앞 서서 평화적인 대축제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원석 대책회의 상황실장은 “경찰이 체포한다 하더라도 시민과 함께 하겠다. 오늘 대책회의는 너무 소중하고 사랑하는 두 동지인 안진걸 팀장과 한청 윤희숙 부의장을 잃었다”며 “지금 경찰은 촛불을 끄려고 안간힘인데, 경찰과 검찰에 엄중히 경고한다. 성난 민심 앞에 왜소한 공권력으로 맞서다가 민심의 바다에서 흔적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민심에 계속 폭력으로 대응하면 우리는 헌법에서 보장한 저항권에 기초해 끌어내릴 것”이라며 “6월10일 100만 촛불대행진 했지만,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200만, 300만 촛불을 만들자. 7월5일 날 장엄한 역사를 여러분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8월17분께 경찰이 평화롭게 진행되는 촛불문화제 대열 맨 뒤쪽에서 시민들을 향해 분말소화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경찰의 소화기 난사로 서울시의회 건물과 한국언론회관 인근은 시야를 확보할 수 없을 정도다.
8시30분께 촛불문화제가 끝났다. 최현준 김성환 기자
[3신 : 28일 오후 8시]
7시10분께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부르며, 52번째 촛불문화제가 시작됐다.
사회자로 나선 이상규(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사무처장)씨는 “기상청도 이명박 정부한테 압력을 받았는지 오늘 비가 허벌나고 온다고 했다”며 “우리는 이렇게 폭우를 뚫고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앞에 모였다. 함성과 함께 파도타기 합시다”며 시작을 알렸다.
촛불문화제는 자유발언 형태로 진행됐다.
설창익 변호사는 “대책회의 관계자들을 구속하기로 했다는데, 이는 명백한 불법”이라며 “도주 우려가 있는 게 아니라 청와대에 항의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변 소속 변호사가 방패에 찍혀 20여 바늘을 꿰매고 머리를 크게 다쳐 국립의료원에 입원중”이라며 “한 변호사는 시민 연행에 항의하다 붙잡히기도 했다”며 경찰의 과잉대응을 비난했다.
최지은(18)양은 “시험공부 하는 촛불소녀들이 도저히 못 참고 뛰쳐나왔다”며 “물대포 쏘고, 초등학생과 노인까지 연행하는 이명박 정부가 80년대로 가고 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 없는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 역사를 20년 후퇴시켰다”고 꼬집었다.
회사의 불법파견에 항의하며 1040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도 무대에 올랐다. 그는 “오늘 이명박에게 미친소 관두고 비정규직 해결하라며 900여명의 단식단이 8보1배를 했는데, 경찰이 발길질하고 욕했다”며 “평화롭게 촛불만 들어도 연행하는 이 나라 정부는 과연 누구의 정부인가”라고 규탄했다. 그는 “촛불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외치며, 무대를 내려왔다.
민중가요 노래패 ‘우리나라’가 나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지금 당장 재협상> 등을 부르며, 공연을 펼쳤다.
임미경(43)씨는 “충남 온양에서 아이 셋을 데리고 나온 다혜엄마인데, 너무 화가 난다”며 “미친 쇠고기를 우리나라에 수입하는 대통령에게 잘못됐다고 말하고자 왔다”고 말했다. 유모차 부대는 서울 뿐 아니라 분당·안양·논산 등 70%가 지방에서 온 엄마들이고, 임신부도 있는데 다들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나온 것이다. 그는 “주말마다 집회에 오는데 한번 오면 밤 꼬박 새우고 다음날 오후에 집에 간다”며 “오늘 나는 살수차에 목욕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그의 등에는 “살수차로 목욕하러 왔다”는 종이팻말이 걸려 있다.
한국언론회관 앞 가운데 도로 한가운데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과 명박산성이라는 글귀가 그려져 있는 가로 10m×세로 3m의 흰 천이 깔려 있다. 화가 임옥상씨의 작품인데, 천을 이어 붙인 것이다. 이 그림은 자유발언이 진행되는 중간에 프레스센터 앞에서 대형 그림을 펼쳤다가 찢는 퍼포먼스로 활용됐다. 임씨는 “우리나라 전통 중에 조각보가 있는데, 서민적이고 안방의 수수한 정서를 대변한다”며 “조각조각 이어진 보를 찢는 행위를 통해 명박산성을 무너뜨려 국민과 소통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여기를 지나던 시민들은 자유롭게 낙서를 하거나 글씨와 그림을 그려 넣고 있다. 이 그림은 현재 덕수궁 돌담쪽에 걸려지고 있다.
한편,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앞서서는 예비집회격인 ‘범국민대회’가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주최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렸다. 최현준 김성환 황춘화 허재현 기자
[2신 : 28일 오후 7시]
28일, 52번째 촛불문화제 때도 살수차가 등장할까? 현재로서는 적어도 3대는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방에서 공수된 살수차 석 대가 시민들에 의해 파손됐다. 시민들은 이날 오후 서울광장에 세워진 경찰의 살수차 3대의 타이어 바람을 뺐다. 살수차가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되자, 물탱크에서 물을 빼내 물대포를 쏠 수 없도록 했다. 또 살수차에 장착된 카메라 전선을 끊었다. 그리고 ‘고시 철회 명박퇴진’, ‘한나라당 해체하라’ 등이 적힌 스티커를 살수차에 붙였다.
6시 현재, 광화문 사거리는 경찰차에 의해 포위돼 있다. 차량통행도 없고, 시민들의 발길도 뜸해 적막감마저 감돌고 있다. 전경들이 외치는 구호소리가 간간히 적막을 깨고 있다.
이날 오후 ‘경복궁 출입 통제’에 나섰던 경찰의 촛불문화제 방해공작도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경찰이 음향기기를 대여했던 사장을 자택에 감금시킨데 이어 방송차량 탈취까지 시도한 것. 광우병국민대책위는 “28일 오전 경기도 수지에 위치한 음향회사 김아무개 사장의 자택에 왔으나, 촛불문화제용 음향차량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오후 2시30분께 돌아갔다”고 밝혔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또 “용산역 근처에서 방송차량과 발전차량이 경찰에 의해 탈취당했고, 퇴계로 인근에서 다른 방송차량도 경찰과 대치중”이라며 “용산경찰서에 음향차량 3대가 압류돼 있다”고도 했다. 이 관계자는 “촛불문화제를 방해하기 위해 경찰과 정권이 법에도 없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규탄했다.
오후 4시50분께부터 남산1호 터널 인근에서 경찰과 대치중이던 방송차량은 200여명의 시민들이 경찰의 포위를 뚫고 되찾아왔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을 향한 경찰의 탄압도 가시화되고 있다. 26일 청와대 인근에서 연행한 대책회의 조직팀장 안진걸(35)씨와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부의장 윤희숙(32) 씨를 28일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박원석 상황실장을 비롯 관계자 8명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대책회의는 이날 설명서를 내어 “국민의 자발적 의지에 따라 진행된 50일 넘게 진행된 촛불인데, 경찰이 대책회의 관계자 몇 명 잡아들인다고 순순히 꺼지겠냐”며 “경찰의 폭력탄압은 국민의 힘에 의해 반드시 퇴치될 것이며, 재협상은 기필코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대책회의 권혜진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은 “촛불 끄기 위해 작전을 쓰는 것 같다. 지도부를 무너뜨리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하나본데. 오산”이라며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회의는 앞으로도 매일 촛불행렬을 이어가고, 7월2일 대규모 촛불을 거쳐 7월5일을 ‘국민승리의 날’로 선포할 계획이다.
7시까지 3만여명의 시민들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다. 손에는 ‘국민명령 고시 철회’, ‘공영방송 장악 안돼’ ‘미국에게 굴복말고 국민에게 항복하라’ 등의 글귀가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다.
초등학교 1학년생 자녀와 함께 나온 신광용(43)씨는 “지금까지 바빠서 한번도 못왔는데, 국민과 정부 사이에 소통이 안되는 것 같아 답답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김봉출(33)씨는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했다. 김조광수(청년필름) 대표는 “촛불시위가 오래 계속되니, 사람들이 좀 지쳤고,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가족단위 참여가 줄어들어 촛불의 수가 줄어든 것 같다”며 “그렇다고 해서 여론이 변한 건 아니다. 현장에 나오지 않아도 다들 안방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6시50분께는 80여명의 어머니 유모차부대가 등장해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들은 “이명박은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 주변을 한바퀴 도는 퍼레이드를 벌인 뒤 대열 안으로 들어갔다. 이은정(37)씨는 “4개월 된 아이의 엄마인데,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광장 한편에는 ‘전국고양이연맹’ 소속 윤원섭(31)씨가 ‘형 왔다! 10초 준다. 어청수는 굴다리로 와라’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중이다. 최현준 황춘화 허재현 기자 sflower@hani.co.kr
[1신 : 28일 오후 5시 30분]
‘고시 철회’를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이 매번 광화문 부근에서 경찰에 의해 제지당하자, 누리꾼들은 28일 ‘경복궁 관람 시위’를 시도했다. ‘경복궁 관람 시위’란 경복궁을 통해 청와대 근처로 진입,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대통령에 전달하기 위해 기획됐다. <다음> 아고라 ‘권태로운창’이 1주일 전쯤 이를 제안했고, 아고라 회원들이 의기투합에 이날 50여명의 누리꾼들이 경복궁 진입을 시도했다. 누리꾼 ‘치우천왕’은 “청와대 진입을 막으니, 경복궁을 통해 글어가 근처에 가서 소리 한번 지르자는 뜻이었다”며 “준법적으로 할 수 있는 수단은 이것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8일 오후 실행에 옮기려 했던 ‘경복궁 관람 시위’는 무산됐다. 경찰이 28일 오후 2시부터 문화재청에 일반시민의 경복궁 관람 중단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경복궁에 진입했던 아고라 회원 50여명은 2시께 모두 경복궁을 빠져나왔다. 이후 진입을 시도했던 누리꾼들도 매표소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경복궁 관리사무소 직원들 역시 갑작스런 ‘관람객 통제’에 난처한 표정이었다. 관리사무소쪽은 “오후 1시에 종로경찰서에서 관람객 입장 통제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직원 한교성씨는 “시민들 입장을 통제하라는 연락을 방금 전에 받았다”며 “시위대 때문에 그런 것이니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오후 2시30분께 관리사무소 지도위원 곽천(75)씨와 설전을 벌인 홍아무개(25)씨는 “곽씨가 시위하는 사람과 폭력 시위대는 선량한 시민이 아니라고 해 분개했다”며 “시위대가 문화재를 파손하는 잠재적 범죄자냐”고 따졌다.
갑작스런 ‘경복궁 입장 통제’에 외국인 관광객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학교수인 중년의 캐나다인(57)은 “사전에 알려줬으면 헛걸음 하지 않았을텐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정보를 미리 줬으면 헛걸음 하지 않았을텐데”라며 답답해 했다.
이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 장관의 방한에 반대하는 집회도 열렸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 20여명은 오후 1시30분부터 외교통상부 건물 앞에서 “라이스 고 홈” 등의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열렀다. 4시께 라이스 장관이 외통부 건물에서 정부종합청사로 이어지는 구름다리에 모습을 드러내자, 이들은 호루라기를 불며 항의했다. 경찰은 이들이 외통부 건물의 진입을 막았을 뿐, 집회 자체를 막지는 않았다.
안국동에서 동십자각으로 가는 도로에는 오후 2시30분부터 시청 앞에서부터 삼보일배를 시작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시민 1천여명이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오늘로 ‘파업 1040일’ 째를 맞고 있다. 오후 4시께 이곳에서 경찰과 한차례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시민 5명이 연행됐고, 40대 남성이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경찰은 전경버스로 바리케이트를 쌓아, 시민들의 청와대쪽 진출을 막고 있다. ‘연행자를 석방하라’는 시민들의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장엔 26일 새벽 광화문 시위에서 전경에 의해 손가락 절단 부상을 당한 조아무개(53)씨 부인도 나와 있다. 그는 조씨가 다친 당시 현장사진을 든 채 “우리 남편 다치게 한 사람이 누구냐. 찾아달라”고 항의했다.
안국동 시위 현장에 80년대 학생운동 조직인 ‘전대협’ 깃발이 휘날렸다. 며칠 전부터 아고라에 등장한 ‘86·87학번들 모이자’라는 게시글을 보고 나온 듯하다. 장원철(42·회사원)씨는 “85학번으로서 젊은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나왔다”며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할 땐 열심히 못했는데 오늘은 내가 시민과 학생들을 보호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 ||||||||||||||||||||||||||||||||||||||||||||||||||||||||||||||||||||||||||||||||||||
Posted by barare-1
치가떨리고
당장 무장을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히틀러도 못할
녹십자 평화 의료.간호사에게
방패로 찍다니요
이건 살인미수입니다
폭력정권 타도하자!!



민주시민여러분 저 여성의료인의
생사를 확인해주세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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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경향] 의료진 가격하면 징역5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동폭행) 및 응급의료에관한법률위반(응급의료법 제 12조는 응급의료조치를 하고 있는 자를 방해하는 경우를 금지하고 있고, 응급의료법 제60조는 동법 제12조를 위반한 자에 대하여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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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아고라 늘푸름님의 글 |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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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3 / 동영상 추가
Posted by bara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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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희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7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최근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서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전경 버스를 파손하고 경찰관이나 전·의경을 폭행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최루액이나 형광색소를 탄 물을 쏘는 것은 폭력을 휘두른 사람과 일반 시민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거리시위 현장뿐 아니라 인근 지역과 지하철, 버스 등에서 옷에 색소가 묻은 시민 등을 추적 검거하는 등 기존의 해산 위주 진압방식을 검거 위주로 바꾸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한 청장은 “경찰 타격대 가운데 3분의 1은 방패를 들지 않고 운동화를 신는 등 간편한 차림으로 운영할 것”이라며 “이들을 활용해 폭력 시위자들을 현장에서 추적하고 검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필요하면 색소를 맞은 시위자는 집에까지 찾아가서라도 전부 다 잡을 것”이라고도 했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전날 오후 일부 기자들과 만나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이 제기되자 “어떨 땐 80년대식 강경진압 한번 해볼까 싶기도 하다. (대책회의가) 80년대 식을 몰라서 그렇지”라고 말한 바 있다.
경찰의 이런 방침에 대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곧 있으면 최루탄도 등장할 것 같다”며 “80년대 방식으로 우리를 이길 순 없으며, 20년 동안 몸으로 민주주의를 확인한 시민들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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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손안의 모바일 경향 “상상” 1223+N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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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2시20분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불콰한 얼굴로 춘추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와대 기자들이 춘추관 브리핑을 주목한 이유는 이날 오전 정부가 미국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를 관보에 게재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쇠고기 관계장관 회의를 직접 주재했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청와대 기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동관 대변인은 브리핑에 앞서 점심 때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기자들에게 알렸다.
불콰한 얼굴로 모습 드러낸 청와대 대변인
| ▲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연합뉴스 | ||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고시 관보게재와 관련한 견해를 밝혔다. 이동관 대변인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로서는 추가 협상에 최선을 다했고, 국민 안전을 지키는 데 소홀함이 없도록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도 마련했다”면서 “만일 고시를 하지 않으면 국제적인 신뢰도 잃게 되고, 추가 협상 결과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고 말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 문제를 마무리 짓고, 이제 어려운 경제를 살리는데 온 국민이 힘을 모아갈 때”라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에게 돌아간다. 식탁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니, 정부를 믿고 지켜봐 달라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데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동관 대변인 " <PD수첩>심각한 문제 의견 모아"
청와대는 MBC <PD수첩>을 성토하기도 했다. 이동관 대변인은 “오늘 회의에서는 MBC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편파왜곡 보도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었다. 참석자들은 ‘공영방송이 의도적인 편파왜곡을 해 국민을 혼란시켰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야당은 정부고시 관보게재를 ‘대국민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대통령 퇴진’ 구호가 넘실대는 현실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가 이번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해결책을 가졌는지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청와대는 MBC <PD수첩>에 책임을 돌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추가 협상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MBC <PD수첩> 보도가 없었다면 지금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얘기인가.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관계 장관회의에서 특정 방송 특정 프로그램을 거명하며 성토한 상황은 이례적인 모습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비판여론 <PD수첩> 탓이라고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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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쇠고기 고시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 ||
기자라면 궁금증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러나 광우병 정국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이나 MBC <PD수첩>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대변인과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은 생략됐기 때문이다.
이동관 대변인은 연단에서 내려온 이후 대변인실로 가려했지만 일부 기자들이 궁금했던 문제들을 하나둘 물어봤다. 이동관 대변인은 MBC <PD수첩> 문제와 관련해 “그것이 온 나라를 이렇게 만든 원인이라면 문제 아니겠느냐”는 취지의 얘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출입증 소속 언론사 확인하더니 "안 가르쳐 주겠다"
발언의 주체가 누구인지가 궁금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말한 것인지, 다른 누군가의 얘기인지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직접 워딩인지 물어보자 이동관 대변인은 청와대 출입증에 적힌 소속 언론사를 확인하더니 웃는 얼굴로 “안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대변인과 출입기자의 대화는, 그것도 공식 브리핑 직후 이뤄진 대화는 사적인 대화와는 다르지 않을까. 청와대의 부실한 브리핑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정부고시 강행에 민심이 들끓는 엄중한 상황이라면 국정 최고 책임자를 대변하는 청와대 대변인은 성의있는 브리핑과 진정성 있는 답변 태도를 보여야 맞는 것 아닐까.
술 기운에서 깨어나지 않은 얼굴로 공식 브리핑 현장에 나타나 준비된 원고를 읽고 일문일답도 없이 내려간 뒤 핵심 현안에 대한 추가 질문에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장난성 답변’을 하는 청와대 대변인 모습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신뢰를 더욱 추락시킬 뿐이다.
미지어오늘 | 원문보기
Posted by barare-1
| 새벽2시 광화문, ‘유모차맘’이 물대포 껐다 | |
| 30대 어머니 가로막고 “내 세금으로 왜 그러나” 비아냥·제지에도 끄떡 않자 34분만에 차 돌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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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32분, 서대문 경찰청 방면에서 왕복 8차로를 가득히 메운 전경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몰려오기 시작했다. 전경들의 대열은 끝이 없어 보였다. 뒤로 살수차가 보였다.
▶8차선 꽉 메운 채 방패로 땅 쿵쿵 치며 위협행진
1시40분, 전경들은 새문안교회에서 광화문쪽으로 시위대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전경들은 방패를 어깨 높이까지 치켜올렸다 땅을 내리쳤다. 그때마다 땅이 울렸다. 선임의 선창에 따라 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들만의 구호를 일제히 외쳤다. 여성들은 겁먹은 표정이었다. 제자리에 얼어붙어 울먹이는 젊은 여성이 보였다. 시위대들은 광화문쪽으로 밀려났다. 1시41분, 2대의 경찰 소속 살수차가 전경들 뒤에 바짝 붙어섰다. “깃발부터 잡아, 강하게 저항하는 놈부터 잡아.” 마이크에서는 쉼없이 지령이 내렸다. 살수차는 물대포이자, 전경들의 대오를 지시하는 지휘부였다. 윙~하는 펌프엔진 소리가 들렸다. 살수가 시작됐다. 물대포였다. 시위대들은 물에 젖었다. 여름의 초입인 6월 끝자락의 밤이지만, 차가운 물에 젖으면 살이 떨린다. 곧 입술이 파래진다. 시위대들은 전경들의 위력과 물대포의 서슬에 아무런 저항도 못해보고 광화문으로 광화문으로 떠밀렸다. 1시48분, 먼저 살수를 시작했던 노란색 살수차 대신 옆에 대기하고 있던 회색 살수차가 물을 뿜기 시작했다. 물길이 두 배는 멀리 나가는 듯 했다. 한없이 쏘았다. 살수차의 물탱크에는 6500리터의 물이 들어간다. 7.5미터까지 쏠 수 있다.
▶경찰 인도로 끌어내려 하자 “내 아이에 손 대지 마!”
1시52분, 회색 살수차가 물대포를 멈췄다. 노란색 살수차와 임무교대를 하려는 듯 보였다. 그때였다. 한 30대 어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노란색 살수차 앞을 가로 막았다. 경찰들이 몰려와 인도로 끌어내려 했다. 어머니는 “유모차에 손대지 마, 내 아이에게 손대지마”라고 외쳤다. 서슬에 놀란 경찰들은 물러났다. 시민들은 “아기가 있다”며 유모차를 에워쌌다. 경찰들은 당황했다. 윙~하고 움직이던 노란색 살수차의 펌프엔진 소리가 멈췄다. 곧 한 무리의 전경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몰려 왔다. 방패로 땅을 치며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이 “애가 놀라잖아”라고 항의했다.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전경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조금 뒤로 물러섰다. 순간 노란색 살수차가 뒤로 빠졌다. 회색 살수차가 이제 주된 역할을 할 모양인 듯 했다. 방금보다 더 강한 엔진음이 들렸다. 물대포 발사 준비 소리였다. 어머니는 곧바로 회색 살수차로 유모차를 끌기 시작했다. 전경들이 몸으로 막으려 했지만, 유모차를 가로막진 못했다.
▶유모차 밖으로 아이 두 발이 쑥, 아! 눈물이 핑~
두 아이의 아빠인 기자는 그냥 망연히 유모차 앞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2시01분, 전경들이 빠졌다. 회색 정복을 입은 순경들이 대신 유모차를 에워쌌다. 일부는 불량스런 표정으로 껌을 씹고 있었다. 유모차를 등지고 있던 순경 한명이 유모차 덮개를 슬쩍 들치려 했다. 껌 씹던 순경이었다. ‘안에 혹시 인형이라도 대신 넣고 가짜 시위하는 거 아냐?’ 이런 표정이었다. 시민들이 “뭔 짓이냐”고 항의했다. 순경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시 유모차를 등졌다. 사람들이 모인 광경을 보고 사진기자들이 몰렸다. 플래시가 터졌다. 어머니는 “제 얼굴은 찍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폴로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는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유모차가 심하게 요동 쳤다. 그리고 유모차 밖으로 아이의 두 발이 쑥 삐져 나왔다. 온갖 굉음에 격한 소음과 쏟아지는 플래시, 아기는 얼마나 심한 공포와 불안에 불편했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저 평범한 엄마입니다, 근데 왜 저를 여기 서게 만듭니까”
2시10분, 여경들이 투입됐다. 뒤에서 “빨리 유모차 인도로 빼”라는 지시가 들렸다. 여경들은 “인도로 행진하시죠. 천천히 좌회전하세요”라고 유모차와 어머니를 에워쌌다. 어머니는 동요하지 않았다. “저는 직진할 겁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도로 위에서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자유가 있습니다.” 또박또박 말했다. 2시15분, 경찰 간부 한명이 상황을 보더니 “자, 인도로 가시죠. 인도로 모시도록”하고 지시했다. 여경들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어머니는 다시 외쳤다. “저는 저 살수차, 저 물대포가 가는 길로만 갈 겁니다. 왜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국민들에게 소화제 뿌리고, 방패로 위협하고, 물 뿌립니까. 내가 낸 세금으로 왜 그럽니까.”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떨림은 없었다. 그때 옆의 한 중년 여경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니, 자식을 이런 위험한 곳으로 내모는 엄마는 도대체 뭐야”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대답했다. “저 평범한 엄마입니다. 지금껏 가정 잘꾸리고 살아오던 엄마입니다. 근데 왜 저를 여기에 서게 만듭니까. 저는 오로지 직진만 할겁니다. 저 차(살수차)가 비키면 저도 비킵니다.” 2시20분, 아까부터 껌을 씹던 순경이 유모차를 등지고 섰다. “어, 저 허리 아파요, 유모차로 밀지 마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시민이 “그럼 당신은 유모차에도 치이냐”라고 면박을 줬다. 순경은 다시 “그 잘난 놈의 아들 얼굴이나 한번 봅시다”라고 곁눈질했다. 어머니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2시23분, 살수차가 조금 뒤로 빠졌다. 경찰들이 다시 “인도로 행진하십시오”라고 어머니를 압박했다. 어머니는 외쳤다. “전 저 차가 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여기에서 서 있겠습니다.”
▶“전 저 차가 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여기에서 서 있겠습니다”
2시26분, 경찰 간부가 다시 찾아왔다. “살수차 빼고, 경력 빼.” 드디어 살수차의 엔진이 굉음을 냈다. 뒤로 한참을 후진한 차는 유턴을 한 뒤 서대문쪽으로 돌아갔다. 2시27분, 어머니는 천천히 서대문쪽으로 유모차를 밀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다시 유모차를 에워싸려 했다.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야, 유모차 건드리지마, 주변에도 가지마.” 경찰들은 뒤로 빠졌다. 어머니는 살수차가 사라진 서대문쪽을 잠시 응시하다 다시 천천히 유모차를 끌었다. 유모차를 따라 갔다. 하지만 말을 걸 수는 없었다. 기자이기 이전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묵묵히 유모차 뒤를 따랐다. 2008년 6월26일 새벽, 서대문쪽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던 물세례에 소스라치던 이들은 갑자기 물대포가 끊긴 이유를 잘 모를 것이다.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 기자는 그것을 대신 전할 뿐이다. 온몸으로 2대의 살수차를 막아선 한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을. | ||||||||||||||||
Posted by barare-1
| “美 수의사 상주” 정부말은 거짓 | |||
| 입력: 2008년 06월 26일 00:18:03 | |||
미국 연방정부 수의사가 미국 도축장에 상주하면서 광우병 임상검사를 실시한다고 밝힌 지난달 2일 농림수산식품부·보건복지부 장관의 대국민 담화는 ‘허위’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미국 도축장에서 소의 연령을 구분하는 업무도 담화문 내용과 달리 미국 연방 수의사가 아닌 미 식품안전검사국(FSIS)의 단기 프로그램을 이수한 검역관이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경향신문이 미 FSIS가 지난 3월 고시한 ‘도축검사 101’ 규정을 확인한 결과 미국 연방 수의사는 임상검사(ante mortem)가 이뤄지는 지역에 상주하지 않고, 적법하게 도축이 이뤄지는지를 비정기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도축장에 상주하며 도축 전 소의 상태를 관찰하고, 도축 과정에서 연령 확인이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제거 과정은 수의사가 아니라 미 FSIS에서 소의 질병이나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 받은 검역관들이 담당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과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미국 연방정부 수의사가 도축장에 상주하면서 임상검사를 실시하고 도축 과정에서 나이 구분, SRM 제거 여부를 감독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12~26일 미국 도축장을 점검하고 돌아온 국립수의과학검역원 현지 점검단이 작성한 ‘수출작업장 점검 결과 보고서’에도 “도축 소의 월령 확인은 ‘훈련된 요원’이 치아감별을 통해 구분하고 있다”며 소의 연령 확인은 수의사가 아닌 FSIS 프로그램을 이수한 일반직원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미 FSIS에 따르면 가금육을 포함해 미 연방정부가 관리하는 도축장은 6200곳이 넘지만 현지점검단이 확인한 결과 미국 연방정부에 소속돼 도축장에 대한 순회 감시를 하는 수의사는 15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진구기자> - 내손안의 모바일 경향 “상상” 1223+NATE - | |||
Posted by bara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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